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니지 혁명 (문단 편집) == 발단 == [[파일:attachment/uploadfile/mohamed-bouazizi-movie.jpg]]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모하메드 부아지지]](Tarek el-Tayyib Mohamed Ben Bouazizi)(위 사진의 주인공. 26세)는 경제 악화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노점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무허가 노점 단속을 하던 경찰에게 팔고 있던 과일과 채소,저울,수레 등을 모두 빼앗겼고 이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소용없었다.[* 정확히는 압수품을 찾으려면 돈을 내야 했는데, 부아지지한테 그런 돈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허가 노점 단속도 그냥 표면상의 이유지, 까놓고 말해서 실상 이유는 [[뇌물|장사하고 싶으면 우리한테 돈 내라.]]였다.] 부아지지는 항의했지만, 돌아온건 구타뿐이었고 결국 2010년 12월 17일 주정부청사 앞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분신 자살을 시도했으며 전신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1월 4일 숨졌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튀니지 국민들은 거리로 나서게 된다. [[위키릭스]]의 튀니지 독재 정권의 호화 생활 폭로로 튀니지 국민들이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의 분노가 폭발한 것도 한 몫 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493333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9&aid=0002396458|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의 재산 중 '''일부'''.]] 이쯤 되면 튀니지 국민이 폭발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위키릭스의 독재 부패의 대한 폭로보다는 [[미국]] [[외교관]]의 개인적인 발언이 혁명의 씨앗이 되었던 것. 튀니지 국민들은 독재 부패에 대해서 항상 불만에 차있었지만[* 물론 폭로된 심각성과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독재자인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는 미국을 포함한 많은 서방국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혁명을 일으키면 [[과테말라#s-3|미국이]] [[살바도르 아옌데|개입해]] [[이라크 전쟁|나라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쑥대밭이]] 될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후에 일어난 일]]을 보면 오히려 미국이 혁명을 도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아랍의 봄 초반에 중동에 대해 미국이 바라던 것은 혁명으로 인한 불안정보다는 독재정권이 존재하는 안정이었다. 정확히는 미국을 지지하는 독재자가 군림하는 것.이래서 이집트라든지 여러 친미 독재자들을 오냐오냐하던 미국이 비난받았다.] 하지만 미국 외교관의 독재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위키릭스를 통해 폭로되었으며, 그로 인해 국민들은 미국이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를 버렸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는 혁명 이후에도 도움을 줘 국제적으로 욕을 쳐먹었다.] 여기에 [[모하메드 부아지지|한 청년의]] 분신자살이 혁명의 불씨가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